파이닝거는 사진이 가장 ‘완벽한 상형문자’라고 했지만 그것도 어느 한계 안에서의 이야기 입니다.
사진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보편적 의사소통 수단으로서는 문제점이 많은 매체 입니다.
사진 영상이 그 하나로 고립됨으로 해서 생기는 언어로서의 또 하나의 한계에 대해서도 미리 확실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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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국경을 초월하는
완벽한 언어의 역할은
단순한 외적 형태를 제시할 때에
국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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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생각하면 영어나 불어 또는 일어로 변역을 안 해도 되는게요,
사람은 사람으로 누구나 알아볼 수가 있어서 그가 말하고 있듯 ‘국경을 초월하는’ ‘완벽한 언어’의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외적 형태를 제시할 때에 한하는 얘기 입니다.
적어도 작가의 내적 경험이나 관념적인 것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 사진은 금방 벽에 부딪칩니다.
사진이란 것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매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념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를 빌리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음을 이미 바로 앞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구체적 사물을 통해 내적 경험을 표현하려면 그 사물에 관한 공통된 내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통된 내적 경험이 없을 때 어떤 사물에 대한 반응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공통된 반응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전달 역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찍는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지만 제 3자가 그 사진을 보면서
작가와 똑같은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내적 경험이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서 한 장의 사진은 단순한 한 개의 형태 한 사물의 겉모습일 뿐입니다.
4.19 혁명 사진
옆의 사진을 보면 4.19혁명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특히 외국인에게 이 사진은 흥분한 군중들의 광태일 뿐입니다.
이 열광적인 군중이 혁명세력인지 폭동세력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 특히 4.19혁명을 몸으로 겪은 사람들에게
이 사진은 보다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사진영상은 이렇게 공통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만
경험이라고 하는 폐쇄 회로를 통해 뜻을 전달 합니다.
아래 등장하는 붉은 악마의 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사진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공감받을 수 있는 사진이 됩니다.
붉은악마 - 한국사람들만이 공감 할 수 있는 사진
붉은악마 - 한국사람들만이 공감 할 수 있는 사진
여기에서 공통된 내적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의미를 전달하느냐 하는 표현상의 문제가 제기 됩니다.
영상화란 이때 등장하는 말로 제 3자에게 나를 표현하기 위한 사진적 창조작업인 영상화 작업에 성공하면 그것으로 사진은 끝 입니다.
이 영상화 적업을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사진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통적 경험이 없는 제 3자에게 작가의 뜻을 전하느냐
다시 말해서 성공적인 영상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가 목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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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화 작업의
성공 비율이 높은 사람을
일러 ‘사진가’ ‘작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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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작가 - 로버트 프랭크 데이비드 라샤펠
세계적인 작가 - 데이비드 라샤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