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역사
사진의 역사
사진의 역사 3
콜로디온을 이용한 습판 사진술은 다게르나 탈보트의 방법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었고, 노출시간도 짧았고, 퀄리티도 좋았습니다. (물론 사진 퀄리티는 다게르의 방법이 최고였습니다. )
하지만 습판 사진술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진을 찍어내고 만들어내는 과정이 너무나 불편 했습니다.
유제를 만들어내는 과정도, 촬영 후에 현상을 하는 과정이 모두 유제가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이는 곧 야외에서도 최종적인 사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암실이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이동 암실이 필요했습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암실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실내에서 촬영하는 경우는 그럴 필요는 없었겠지만 실내의 경우도 손님이 언제 올 지 모르기 때문에 유제가 마르는 것에 대해 늘 스트레스가 있었을것 입니다. (아래사진은 콜로디온 습판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요는 발전과 발명을 가지고 오듯이 습판의 불편함은 건판이라는 방법으로 해결 됩니다. 즉 이동형 암실이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1871년에 리차드 매독스라는 치과의사는 젤라틴을 이용한 방법을 알아냄으로 사진술의 발전에서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됩니다.
젤라틴은 특정 온도 이하에서는 딱딱하고 그 온도 이상에서는 흐물거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리 건판에 젤라틴을 바인더(감광제를 잡아주는 매개체)로 사용함으로 마른 상태에서도 촬영과 현상이 가능한 시대를 열게 된 것입니다.
젤라틴은 또한 감도를 증가시켜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감광제 또한 염화은에서 취화은으로 바뀌면서 고속셔터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젤라틴과 취화은과의 만남은 사진사에, 아니 우리 인류사에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머이브리지가 12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말이 달리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 입니다.
건판 사진술로 인해 사진의 노출시간이 초 이하로 단축되면서 사람의 눈에는 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열두장의 사진은 인류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상식을 뒤집었습니다.
말이 달리는 모습을 그린 그동안의 그림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입니다.
머이브리지는 이 작업 이후 탄력을 받아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사진집을 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진집은 전 인류에게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과학자들과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특히 그 동안의 인식의 과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짚어보는 시간을 같게 됩니다.
미술가들은 이때부터 사람의 눈에 보이는 인식의 세계를 뛰어 넘는 세상을 그림으로 그려냅니다.
아래는 뒤샹의 작품 입니다. 이는 쥘 마레이의 작업을 연상시킵다.
두 작업을 한 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뒤샹의 작업이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을 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건판술의 발명은 인간의 시야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며 전세계적으로 사진 붐을 일으킵니다.
먼 거리 여행도 가능하게 되고 장기간 보존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불편한 점이 남았으니 바로 베이스가 유리라는것 이었습니다.
유리건판. 즉 깨지기 쉽다는것 입니다.
우리나라에 사진이 들어오게 된 것도 이때 즈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보존되고 있는 유리건판들도 깨진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등장한게 바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KODAK 입니다.
조지 이스트만은 유리건판의 최대 단점인 깨지기 쉽다는 것과 보관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비닐에 유제를 도포하여 판매하기 시작 합니다.
롤필름이 발명될 당시의 코닥에서 했었던 광고 입니다. 카피가 아주 인상적이죠!
건판으로 인해 사진이 보편화 되기 시작했다지만 아직 사진은 전문가의 영역 이었습니다.
그 전문가의 영역을 코닥이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냥 누르기만 하고 코닥 대리점에 가져다 주기만 하면 사진 100장과 다음 필름이 다시 로딩되어 받을 수 있다. 이 얼마나 획기적인 생각인가요!
이 때부터 사진은 대중화가 되기 시작 합니다.
누구나 쉽게 적당한 셔터만 누르면 되었습니다.
사진은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고급 취미가 된 것입니다. (한 때 DSLR이 폭풍적으로 팽창할 때와 비슷합니다.)
위의 사진은 카메라를 들고 셀프를 찍고 있는 에밀 졸라 입니다.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 역시 취미사진을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술의 발달은 일단 롤필름에서 정점을 찍고. 그 뒤로는 이렇다할 것이 등장할 게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젤라틴과 취화은을 사용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 이후 그야말로 혁명적인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롤필름이 사진술의 최정점이었습니다.
사진의 개념은 계속 변화했습니다.
다게르가 만든 사진은 은판이었고, 탈보트가 만든 사진은 종이였습니다.
아처의 습판 사진술에서 사진은 종이가 되기도 하고 아연판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에 대한 접근성도 시대가 바뀌면서 많이 바뀌었죠. 사진이 만들어질 때까지만 해도 사진은 전문가의 영역이었지만
롤 필름으로 사진이 대중화 되면서 사진이 일상으로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사진공부를 하면서 사진술의 발달 과정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대중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어 갔느냐를 안다면
현재 자기 사진의 위치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