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술의 발달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렌즈의 밝기가 밝아지며 감광제의 감도가 상승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발명 당시 20여 분에 가깝던 노출시간이 초 단위로 내려가고 건판술에 이르러서는 초 이하의 셔터속도까지 가능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빨라진 셔터 속도를 활용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머이브리지는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동물들의 움직임을 기록하여 그동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던 순간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성공합니다.
이드위어드 머이브리지(Eadweard J. Muybridge 1830~1904) 미국
대형 풍경 사진가였던 머이브리지는 1872년 당시 철도회사 부호인 스탠포드로부터
말의 뛰는 동작에 대한 촬영 의뢰를 받아 달리는 말을 찍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킵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인식되어 있던 말의 운동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말의 달리는 모습은 오른쪽 그림과 같이 공중에 떠있을 때 네 다리의 모양은 앞뒤로 쭉 뻗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촬영해본 결과 정 반대의 모습으로 말의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엡섬의 더비 경마 - 1821년 / 테오도르 제리코
머이브리지가 촬영한 말이 달리는 모습
머이브리지는 고속촬영을 위해 12대의 카메라를 사용했고 이 방법으로 특허를 출원합니다.
또한 지속적인 촬영과 연구를 통해 1887년 움직임에 관한 사진집 <동물의 동작 Animals in Motion>, <인체의 동작 Human Figure in Motion>이라는
두 권의 사진집을 출간하게 되는데 사진집의 사회적인 여파는 대단했습니다.
사진집에 실린 인간의 일상적인 도해는 인습적으로 생각했던 자세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사실적 묘사를 중요시 여기는 화가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당대의 유명한 과학자나 예술가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으며 성공의 반열에 올려놓게 됩니다.
머이브리지의 사진집에 실린 사진들
19세기 서구의 과학과 예술의 관심사는 순간 동작에 첨예하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머이브리지가 이러한 연구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각적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당시 서구 사회의 욕망을 풀어보겠다는 스탠포드의 재정적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머이브리지의 연구 성과는 계속해서 또 다른 연구의 도전에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에티엔느 쥘 마레(Etiennne - Jules Marey 1830~1904) 프랑스
머이브리지가 동작의 분해와 분석에 역점을 두었다면, 마레는 부분 동작의 조합, 혹은 총체적인 결합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빠른 셔터 속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사진 총 photograph gun을 고안하여 1/500초보다 빠른 초당 12프레임 촬영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줠 마레의 사진총
줠 마레의 사진
1883년에는 사진 총을 개선한 동사진 카메라 Chronophotoraph Camera를 완성하여 한 장의 원판에 스무 번의 노출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레의 관심은 주로 생리학적 연구가 주를 이루었지만 또한 떨어지는 물체와 공에 관한 기록도 있었습니다.
1890년 이후에는 보다 전문적인 양상으로 발전하여 턱의 저작운동 및 자전거 타는 장면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오토마르 안쉬츠(Ottomar Anschutz 1846~1907) 프러시아
오늘날의 포컬플레인 셔터와 유사한 시스템을 개발해 군사훈련과 동물의 순간 동작을 포착했습니다.
또한 지금의 애니메이션과 같은 원리를 이용해 연속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꾸준히 개발합니다.
안쉬츠의 사진들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1813~1916) 오스트리아
1888년 셔터를 개방한 상태에서 총탄이 렌즈 앞을 지나는 순간 쇼트를 발생시킴으로써 고속 발사체의 순간을 포착하는데 성공합니다.
초음속 탄환 주위의 활 충격파 - 1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