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현실성에 이어 거론되어야 할 것에 우연성이 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어서 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때 마침 그 자리에 소설가나 화가가 아닌 사진가가 있었고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풀 길 없는 우연인 것입니다.
사진의 우연성은 이렇게 출발 합니다.
우연적 촬영 {출처_파란사진]
그렇기 때문에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진가도 있습니다.
단 한 건의 우연도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의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우연을 놓치지 않겠다는 단순한 사냥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진에 일생을 건 사진가의 마음가짐이
카메라를 늘 가지고 다니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주머니 안에 볼펜이 늘 들어 있듯 카메라는 사진가의 일상 휴대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무엇인가 꼭 쓸 것이 있어서 볼펜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듯 무엇인가를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카메라는 사진을 하는 사람의 일상 습관이 되어 늘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 바탕에 우연성에 대비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음은 물론입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사진 촬영에서 인내를 강조한 다음의 말은 소형 카메라의 사용법을 정확히 지적한
올바른 충고와 동시에 우연성을 극복하고자 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핸드 카메라에 의한 작품에 절대로 필요한 조건은 인내라고 하는 사실이다.
이는 모든 일에 공통되는 금언이지만 특히 핸드 카메라로 촬영할 때엔 당황해서 셔터를 마구 누르는 사람이 많으며,
몇 톤이나 되는 건판을 써 가며 최후의 결과에나 찬스를 걸어보는 사람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
때로 이들이 히트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예다.
핸드 카메라는 우연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_ 삼등 선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_ 겨울 5번가
즉, 우연에만 의존하지 말고 미리 계산해 두었다가 원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금방 찍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럼으로써 우연성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 말이었습니다.
이 우연성을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여 피어난 꽃이 결정적 순간의 주인공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었습니다.
결정적 순간이란 말이 의미하듯 작가의 호흡이 대상의 외적 조건과 일치되는 극적인 한순간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작가는 우연성을 극복할 수 있었고 이 우연성을 극복함으로써 작가의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스티글리츠도 인정했듯 우연성은 사진의 한 특성입니다.
몇 백 분의 일초라고 하는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셔터 속도로 찍히게 된 카메라 메커니즘부터가
우연성을 바탕으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사진적 숙명을 단적으로 상징합니다.
몇 백 분의 일초로 찍히는 영상이 특히 움직임이 어떻게 찍혀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 메커니즘입니다.
사진 영상의 형성도 사진가가 개입할 수 없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과학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없는 곳에서 나와 아무런 의논 하나 없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진 결과를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우연성 사진에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진 사진가인 리 프리들랜더의 다음 글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우연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리 프리들랜더의 사진
내가 가게 앞의 기를 찍으려 한 것은 그 깃발 때문이었다. 기를 놓는 곳치고는 이상한 곳이었다. 거기에 마침 발이 들어왔다.
순간 나는 얼른 셔터를 눌렀다. 발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경우가 사진에는 종종 일어나는데 나는 이런 일이 재미있다.
따지고 보면 사진에 찍힌 영상 치고 우연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현실 자체가 우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창출에서부터 의식적인 소도구의 사용 그리고 연출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상업 사진에서도 이 우연성은 그 바탕에 짙게 깔리게 마련입다.
우연성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그것은 사진에 또 하나의 지평을 여는 창조 행위 예술 작업이 됩니다.
윌리엄 클라인
로버트 프랭크